웰링턴 (Wellington)
뉴질랜드 북섬 최남단에 위치해 있고, 행정상으로는 웰링턴 시 자체와 그 인근 지역인 포리루아(Porirua), 어퍼 헛(Upper Hutt), 헛 시티(Hutt City) 등을 포함한다. 웰링턴 시의 원래 대지는 1839년 뉴질랜드 회사의 윌리엄 웨이크필드 대령에 의하여 선택된 오늘날의 페토네(Petone) 지역이었다. 며칠 후에 오늘의 램턴 항의 입구 지대로 옮겨졌다. 또한 오늘날의 대지가 마오리족들에게 대항하는 요지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의 육지로 둘러싸여 있는 웰링턴 항구는 1826년 허드 선장이 처음으로 탐험하였고, 항구가 뉴질랜드 회사 정착의 대지를 처음으로 결성하는 웨이크필드 대령의 결정을 짓는 곳이 되었다. 쿡 해협을 바라보며, 지구성(地溝性)이 깊은 만(灣)을 따라 발달한 항만도시인데, 상업가는 해안 부근, 주택가는 주변 사면에 발전하고 있다.
1841년 윌리엄 홉슨(William Hobson)이 수도로 정한 오클랜드를 대신하여 1865년 웰링턴이 뉴질랜드의 수도가 되었다. 1862년 7월 7일 처음으로 웰링턴에서 의회가 열렸다. 이 거리가 공식적으로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 후 한동안 걸렸다. 1863년 11월, 알프레드 도메트(Alfred Domett)가 오클랜드 전 의회에 "정부의 소재지를 쿡 해협 연안의 어느 적합 한 장소에 옮기는 것이 필요됐다"는 동의를 제출하였다. 남섬이 금 광맥의 존재를 배경으로 별도의 식민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분명히 있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파견된 판무관은 항구가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웰링턴이 수도에 걸맞은 의견을 밝혔다. 1865년 7월 26일, 의회는 처음 공식적으로 웰링턴에 설치되었다. 당시 웰링턴 인구는 4900명이었다. 웰링턴은 또한 뉴질랜드 최고 법원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고등 법원 건물이 향후 개장한 대법원으로 사용 예정이다.
지도 - 웰링턴 (Wellington)
나라 -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국기 |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마오리어와 뉴질랜드 수어